협력교회(설교)
율법의 저주에서 나와 예수를 붙들라!(마18:21-22)
예수회개천국지옥
2022. 6. 16. 16:24
율법의 저주에서 나와 예수를 붙들라!(마18:21-22)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모든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것이요.
많은 자들이 율법과 은혜사이에서 혼동스러워하고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지만 율법과 은혜의 관계는 그리 어렵지 않다.
어렵게 만들고 복잡하게 만다는 것인 귀신의 장난이다. 복음은 쉬워야 남녀노소 누구나 붙들고 천국갈 것이 아닌가?
사람이 율법 속에 갖혀 있으면 죄책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유함이 없다. 왜? 이것 지키면 저것을 어겼고, 저것을 또 지키면 이것을 어기게 되기 때문이다. 평생 어떻게 말씀을 어기지 않고 살까? 전전긍긍하면서 지내게 된다. 어떻게 우리가 수없이 많은 율법을 다 지킬 수가 있겠는가?
율법에 갖혀서 사는 사람을 보면 누구보다 신앙생활 잘 하는 것 같이 보인다. 이 말씀, 저 말씀을 어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의 끊임없이 죄악은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스쳐 지나가는 생각, 말 한마디 실수는 어떻게 덮을 것인가!
율법주의자들의 생각 속에는 온통 율법, 율법을 어떻게 지킬까에만 집중되어 있고, 심지어 죄가 아닌 것도 어릴적부터 거슬러 올라가 다 꺼집어 내어 해결하려고 한다.
율법에 갖힌 자들은 자유함과 기쁨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지키고 아는 율법의 잣대로 이웃을 판단, 정죄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말씀에 어긋나면 가차 없이 정죄의 칼날을 들게 된다. 마음에 기쁨과 자유함이 없으니 사단이 그런 마음의 상태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율법에 갖힌 자들은 구약의 모든 말씀도 그대로 빼놓지 말고 지키려고 한다. 돼지고기도 안먹고, 순대도 안먹고, 주일에 손까딱 하지 않고 아무 것도 안한다. 심지어 급한 일이 있어도 돈쓰지 않는다.
마당에 물도 못 뿌리게 하고, 난방기름이 떨어져도 사 넣지 않는다. 거기에 어찌 영혼을 향한 사랑과 자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율법도 영혼살리라고 주신 법이 아닌가!
물론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말씀에도 99가지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한 가지만 범하면 율법을 다 어기는 것이 되고 만다고 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연약함을 가지고 예수 앞에 가지고 나가 진실로 회개하면 된다. 그러면 예수님의 보혈이 쏟아지면서 지금까지 지었던 죄가 깨끗이 씻음 받고 변화여 새사람되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면서 말씀을 기쁨과 자원함으로 지킬 수 있는 권능도 함께 주어지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라. 예수님께서 형제의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라고 했는가? 490번이다. 이것은 거의 무한대라고 보면 된다. 이것이 주의 보혈의 능력이다. 주의 보혈이 씻는 죄의 횟수가 정해져 있는가? 죄의 경중이 정해져 있는가? 아니다. 모든 죄를 씻는 능력이 주의 보혈에 있다. 그리고 490번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가 어떤 습관적인 죄를 지을때마다 자꾸 회개하면 나중에는 성령께서 그 죄를 잘라주시고 그 죄의 생각을 없애 버려주신다. 그게 회개의 능력이다. 회개하면 귀신도 떠나가고 성령이 임하며 죄를 이길 힘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 앞에 나와서, 은혜의 법아래에서 이 회개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기쁨도 없고 자유함도 없고 늘 죄책감에 눌려서 어떻게 하면 모든 말씀을 잘 지킬까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구원받는 강도가 그 짧은 시간에 어릴적부터 지어온 모든 죄를 다 꺼집어 내어 낱낱이 회개했겠는가? 그냥 “저는 죽을 죄인입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 주세요! 나를 기억해 주세요!” 이런 식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겠는가?
그때 주의 보혈이 쏟아지면서 과거와 지금까지 지었던 죄악을 다 사함받은 것이다. 만일 그 강도가 십자가에서 내려와 일상생활을 했다면 또 날마다 그렇게 기도하고 회개하면서 살아가야 천국갈 수 있었을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어떻게 하면 율법을 지킬까에만 온통 마음이 집중되어 있지, 자신의 잘못과 실수와 죄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 마음에 자유함과 기쁨이 없고, 예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 친 아버지인데 양아버지처럼 섬기고 있다.
율법의 역할을 단 한가지다.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킴으로 구원받는게 절대 아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은혜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붙잡아라고 주신 것이다. 무조건 말씀에 찔리면 십자가 앞에 나아가 예수의 발앞에 엎드려 회개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다. 하늘 아버지가 그 자녀들의 어떤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겠는가?
율법에 빠진 자들은 회개한다고 해도 죄사함받은 것을 믿지 못하고 그 죄에 대해서 계속 반복해서 반복해서 회개한다. 그것도 불신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마음속에는 모든 죄는 다 들춰내서 다 낱낱이 회개하지 않으면 죄용서함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거기에 어찌 자유함과 기쁨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수십만가지 정도나 되는 우리의 일생의 모든 죄를 어찌 꺼집어낼 수 있겠는가? 기억나는 죄를 회개하면 미처 기억나지 않는 나머지 죄는 한꺼번에 씻음 받는다는 것을 믿어라!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다.
온 세계가 율법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 바리새인과 같이 마음에 성령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도 없는 상태에서 율법만 지키려고 하니 몸과 영혼만 피곤할 뿐이다.
이제는 말씀에 순종하며 살다가 실수 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주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으라. 그리고 다시 일어서라. 그리고 성령받으라. 성령을 받아야 마음중심에서 우러나와 자원함으로 주님과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대표적인 율법주의자들이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말씀대로 사는 것 같았지만 마음중심은 예수님으로부터 멀고 온갖 방탕과 탐욕으로 가득찬 자들이었다. 외식하는 자들이었다. 그들 안에 성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씀을 지키려고만 했지 회개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개없는 자에게는 결단코 성령도 구원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령 받아야 예수님사랑, 영혼 사랑하는 맘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다. 성령없이는 아무 것도 안된다. 성령이 오시면 자유함과 기쁨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다.
문자적으로 말씀만 지키려고 하는 것은 율법주의자들의 모습이다. 그 마음속은 절대 변화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님은 율법을 폐하러오신 것이 아니라 사랑의 법으로 율법을 완성시키셨다.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맘을 가지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십계명이 지켜지는 것이다. 사랑하면 그냥 다 지켜지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의 법이요, 자유의 법이요, 생명과 성령의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