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의 천국,지옥간증,루시퍼와의 대화는 마지막때 믿음생활잘못하다 지옥가는 영혼들을 살리시기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특별히 열어주신 사건이며 불신자나 신자를 막론하고 다 창조주이신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하면 천국갈수있다는 메시지 입니다.한치의 거짓도 조작도 아닌 100프로 진실임을 밝혀둡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분이십니다.이 사건보다 더 큰 일도 하시는분임을 믿으면 깨닫고 믿어지게 될것입니다. 전달하는 방식을 문제삼기보단 내용이 성경과 일치하는가의 여부를 가지고 분별해야 할것입니다.죽은다음엔 다시는 회개의 기회가 없음으로 살아있을때 기회를 잡아야 할것입니다.
귀신은 타락한천사이며 인간들을 죄짓게하고 예수못믿게하고 예수 잘못믿게 하여 지옥으로 끌어가는 극악무도한 악마들이며 그 두목은 루시퍼 입니다. 세상만사가 귀신의 장난입니다.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믿음의 행위와 율법의 행위는 다르다!)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우리의 구원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며 진리이다. 그러나 단순히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정말 그럴까? 비슷한 말인 것 같지만 “구원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구원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말속에는 행위를 포함한 모든 믿음의 속성들이 포함된 반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에는 행위와는 전혀 상관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아무런 행함이 없이도 단순히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물론 이 말씀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도 바울이 행위라고 말씀한 것은 <유대교의 율법의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음의 말씀을 보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사도 바울의 말씀의 요점은 분명하다. 유대인들이 유대교의 율법을 행함으로써 구원을 얻으려는 생각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것에 일침을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행위는 어디까지나 그 율법의 행위이며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 할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서의 말씀을 오해하여 아무튼 어떤 행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구원,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이상한 구원 공식을 주장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행위가 포함된 구원을 이야기할 때 나는 흔히 행위구원론자라는 표현이 동원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말 행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많은 말씀들은 크나큰 모순점을 안게 된다. 말씀을 계속 보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여러분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좁고 그 길이 협착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가? ‘찾는 이가 적다’는 표현을 영어 성경에는 'only a few find it'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아주 적은 사람만이 그것을 발견한다는 뜻이다. 그럼 구원으로 이르는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한 이유를 아시는가? 그것은 구원이 '나는 예수님을 믿어'라고 하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그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기 위한 행위, 즉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르는데 있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 믿기만 하면 가는 곳인데...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고 하시지 않느냐.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 된 것이지 구원에 행위라니 무슨 이단 같은 소리냐."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가르치신 말씀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 7:19)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21-27)
예수님께서 단순히 믿는 믿음만을 이야기하시는가? 아니면 그 믿음을 온전케 하는 행위를 말씀하고 계시는가? 계속 읽어보자.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
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 25:34-36,40-46)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이처럼 믿음의 행위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행위구원이라 한다면 예수님은 행위구원론자가 되고 만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은 세상 끝날에 주님께서 모든 민족을 심판할 때에 하실 말씀인데 그 기준선은 단순한 믿음에 있지 않고, 그 믿음을 온전케 하는 행위에 있다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같이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17,22,26)
아직도 '무슨 소리냐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데...' 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말씀을 더 읽어 드리도록 하겠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입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계 3:1-3)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계 3:7,8)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4-16)
이 말씀들은 행위구원을 외치는 어느 이단의 구절이 아니다. 성경에서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다 보셨듯이 주님의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믿음만인가 아니면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인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5,16)
'이 모든 일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벧후 3:11,12)
베드로 사도도 그의 서신들을 통해 우리에게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이고, 초대교회 사도의 간절한 권면이며, 신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본분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의 구원이 단순히 '믿~씁니다' 하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를 온전케 하는 믿음, 즉 행위로도 충분히 증명되어질 수 있는 믿음임을 말씀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도 다른 말을 하고 있지 않다.
행위구원론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이여, 바울 사도의 서신들을 자세히 보라.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10)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19-21)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롬 1:28-32)
믿음에는 분명 해야 할 일뿐만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일들도 있다. 이것은 물론 인간의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 즉, 예수님을 구원자 곧 그리스도로 따르는 거룩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그 하루하루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쌔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5-27)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구원은 언뜻 쉬워 보여도 그렇게 간단치 않다. 만약 구원이 '믿~씁니다' 하는 우리의 입술의 고백만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 대신 그를 붙들고 영접기도를 시키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구원은 결단코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계신가?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죄와 싸우고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하고 계신가? (히 12:4)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이전 것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계신가?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 21:36)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가?
열처녀의 비유(마 25:1-13)에서 기름을 준비하는 처녀들은 바로 이러한 것을 행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진실된 회개를 통해 모든 악독을 버리고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며 기도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구원은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할 때 그 선택에 의해 나에게 주어지지만, 실로 그것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가는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그 구원을 온전히 완성시키기 위해 자라가는 것이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기독교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기독교의 진리는 다름 아닌 바로 기독교인들에 의해 멸시의 대상이 되고, 지탄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으며,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과연 어떻게 이 말세를 살아가야할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진실된 믿음이 실종되고, 삶의 거룩과 경건이 사라졌으며, 쉬운 구원만을 주장하는 거짓 복음들이 우리 주위에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성경 말씀으로 바로 돌아가 자신의 믿음을 냉철히 점검하고, 회개하고, 깨어 기도하는 신앙을 회복해야겠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주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린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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